지난 , 꿈뜰일꾼 보루는 밝맑도서관에서 마련한 <2015 마을기록수집가 양성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과정 중에 봄학기를 마무리하며 정리한 트리트먼트를 공유합니다. 트리트먼트는 원래 영화작업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시놉시스가 전체 윤곽, 대강의 줄거리라면 트리트먼트는 구체적인 사건이 담긴 줄거리를 시퀀스와 씬별로 나누어서 정리한 것을 말합니다. 이 트리트먼트의 각 씬에 지문을 붙이고 대사를 붙이면 시나리오가 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트리트먼트는 구조가 보이는 한편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와 마을기록과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실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과정을 진행하시는 이영남선생님께서 일단 써보자고 하셔서 써 보았을 뿐입니다^^ 물론 아주 조금 뭔가 감이 잡히기는 하지만, 이거다라고 이야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에 자세한 설명은 이만 생략하겠습니다. 단, 보루가 어쩌다가 꿈이자라는뜰을 시작했고, 어떤 과정을 지나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기에 더 없이 편리하다는 말은 할 수 있겠네요. 일단은 요게 포인트!



<2015 마을기록수집가 양성과정; 꿈이자라는뜰 보루의 트리트먼트>

꿈이자라는뜰의 지난 흐름을 읽어내는 작업을 시작하며.

2015년 봄_마을기록가 양성과정, 보루


Why. ___________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시간은 알아서 흘러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요인들 때문에 사람들(또는 단체들)의 역사는 저마다 독특한 흐름을 가지게 된다.‘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다’라는 목표의식이나, ‘어떻게 해야한다’라는 가치들처럼 또렷한 ‘이상과 요구’들은 대체로 드러난 요인들이다. 이런 요인들은 흐름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아직 명확한 말로 표현되지 않고 숨어있는 요인들이 있다. 그렇게 드러나지 않은 요인들은 인간 내면 또는 인간 관계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갈등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 입장과 방식의 차이, 개인의 한계와 사회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생기는 문제와 갈등들. 오히려 그런 요인들이야말로 흐름을 독특하게 만들어내는 더 강력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일관된 방향성이 있는 흐름을 유지하고 싶다. 사는대로 생각하기, 생각하는 대로 살기. 그 중간 지점에서 살고 싶다. 살아지는 대로만 살고 싶지도 않고, 생각하는대로 살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다. 흐름의 다양한 구성요인들을 발견하고, 정리하고, 다시 읽어보는 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걸어왔는지 알고 싶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갈등들과 수많은 갈래길을 마주하게 될 게 분명하다. 그 길 위에서 계속 일관성을 가지고 나아갈 힘을 갖고 싶다.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힘, 사람이나 가치를 빼먹지 않게(유식하게 이야기하면 소외시키지 않게) 만드는 힘을 갖고 싶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드러나 있는 요인들을 정리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드러나 있다고 해서 항상 그 요인을 빠짐없이 살필 수 있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선 흐릿하고, 쉽게 드러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구체적인 논의에서 언급되거나, 글로 적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강력하게 흐름의 굴곡을 만들어낸 숨은 요인들을 차근차근 발견해내고 싶다. 시작은 보이는 것부터지만, 결국엔 잘 보이지 않았던 요인들에 더 주목하고 싶다.


드러나지 않았던 흐름의 요인들을 정리해보고 싶지만, 두려움이 있다.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하면 어쩌나, 정작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요인들이 가려져 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완벽함, 완결성에 대한 욕심이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혹시나 이런 요인들이 ‘어떻게’ ‘잘’ ‘해야하는 일’정도에만 머문다면 자칫 의무감만 지워주는 피곤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또 하나의 걱정. 숨겨져 있었던 것은 또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괜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일은 아닐까? 갈등을 오히려 키워 버리는 것은 아닐까?


기록에 갇히면 어쩌나, 도그마에 갇히면 어쩌나, 긁어부스럼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넘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지내는 것은 만족스러운가? 시간이 흘러가 버리는 동안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잊혀지는 요인들, 사라져버리는 흐름들, 가려지고 소외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한 탓에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쓸데없는 도그마에 휘둘리는 것은 또 괜찮은가를 생각해본다. 판도라의 상자. 그 상자는 이미 열려있지 않나? 이미 상자밖으로 어둠과 밝음이 모두 튀어나와 있는데, 어둠은 어둠대로, 밝음은 밝음대로 그리고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것들은 또 그런대로 끌어안고 가야 하지 않을까? 외면한다고 갈등과 문제들이 사라지나? 일단은 어떤 모양인지 온전히 마주해 봐야 덮어둘 것인지 풀고 갈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있지 않을까?


드러나지 않았던 흐름의 요인들을 발견하고 싶은 두번째 이유를 찾았다. 흐름의 요인들을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흐름과 또 그 흐름을 만들어내는 저마다 각기 다른 요인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요인들이 완전히 다르지 않으며, 각각의 흐름은 또 어느 순간 겹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의 모습을 비추어 숨어있던 요인을 발견하게 도와주기도 한다. 나의 흐름의 요인들 살펴보니 작은 것, 약한 것, 어두운 것, 꼬인 것도 의미가 있더라. 우리의 흐름을 살펴보니 아이, 어른, 노인, 장애인 모두 의미가 있더라. 그래서 괜찮다. 나에게, 서로에게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의 흐름들이 드러나고, 연결되면 여럿이 공유하는 조금 더 큰 흐름이 만들어진다. 이 큰 흐름은 ‘우리'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여럿이 함께 방향성을 유지하며 움직이게 하는 힘.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 주는 힘, 누군가를, 무언가를 소외시키지 않도록 도와주는 힘을 갖게 해준다고 믿는다.


다행이다. 혼자가 아니다. 동무가 있다. 꿈이자라는뜰에서 함께 시간을 이어 온 동료가 있고, 객관적으로 살펴봐달라고 부탁할만한 동무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길잡이가 함께 하고 있다. 빠짐없이 꼼꼼하게 기록을 남겨온 것은 아니지만, 많은 양의 사진과 문서들도 가지고 있다. 수년이 지난 사진을 펼쳐놓고, 사진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을 읽어내려 한다. 그래서 드러나 있던 요인들 그리고 드러나 있지 않았던 요인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고, 발견해내고 싶다. 집중할 시간도 마련하였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꿈이자라는뜰에서 수업하고, 농사짓는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리고나서 목요일 저녁, 아카이브 공부시간과 금요일 한나절은 꿈이자라는뜰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으로 가질 예정이다.




How. ___________


2009년 가을에 시작한 꿈이자라는뜰은 비교적 많은 사진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일단 사진을 정리하고 싶다. 사진을 고르다가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으면, 적어보도록 하자. 주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 선생님들의 이야기일게다. 지금까지 글로 적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사진이라는 그물을 통해 모아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잡은 이야기들을 주욱 펴 놓으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어떤 흐름들이 보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마을기록가양성과정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진들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챙겨 모으다 보면 콜라주처럼 꿈이자라는뜰의 큰 이야기가 들려질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꿈이자라는뜰의 이야기를 먼저 챙겨놓고, 그 이야기를 통해 적절한 사진 기록 분류방식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사진 분류와 정리작업이 다 끝나면 다시 한번 이야기를 다듬겠지만, 기억을 되살려 보루의 꿈뜰 이야기를 먼저 한번 풀어놓도록 한다. 




What. ___________


보루의 꿈이자라는뜰 이야기

꿈이자라는뜰 season1(2009~2015)


Prologue

장애학생을 위한 농업교육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래서 마을에 장애와 관련된 사람들_부모, 교사, 마을교사들이 모여서 회의를 시작했다. 초중학교 프로젝트 예산으로 시작하지만, 예산이 끝나도, 교장과 교사가 바뀌어도 이 일은 계속되어야한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학교 밖에서, 마을에서 시작해볼까? 그렇다면 지속적으로 이 모임을 꾸려 갈 마을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마을교사들을 지원하고, 학교와 마을교사들을 연결하고, 아이들을 오랫동안 살피고, 결국에 마을과 연결해줄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면 예산을 기약할 수도 없는데, 그 안에 자립을 해내야 하는데, 그런 일을 맡아서 할 사람이 없다. 마을에 꼭 필요한 일, 오랫동안 바라온 일인데 앞날이 불투명한 이 일을 누가 맡아서 할까? 사람이 없다. 어쩌면 좋으나?


1막

A

#1

2009년 가을. 보루는 내년에 전공부 창업을 앞두고 있다. 보루는 농사를 지어 자립을 하고, 마을에 정착해서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래서 1년전에 홍동으로 아내와 아이, 어머니까지 온 식구를 데리고 내려왔다. 전공부에서의 2년. 어린 아이와 식구들을 챙겨야하고, 학교 수업도 들어야 하고, 농사실습도 해야 한다. 창업을 앞두고 농사일을 배우고 익히기에 바쁘다.


#2

보루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뭔가 잘 가르친다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어쨌거나 보루는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일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풀무전공부 2학년 논농사 과제도 “풍년새우와 햇빛, 아이들과 함께 짓는 논농사”였다. 그래서 논농사를 짓는 동안 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 볍씨도 뿌리고, 모내기도 하고, 벼바심(추수)을 진행하기도 했다. 


#3

그러던 9월 어느날, 장애학생들을 위한 농업교육 프로젝트를 맡아보라는 제의를 받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원래 보루는 장애인, 이주민, 노인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우선 농사로 자립을 하고 싶었던 보루는 자신의 계획, 의지를 내려놓고 주어진 일을 받아들여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을 시작한다. 농사를 지어 자리를 잡을 때쯤, 그러니까 한 20년은 지나야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해도 되는 것일까?


B

#4

보루는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전공부 2년의 시간동안 삶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나’의 계획과 의지가 중요한 편이었는데, 이제는 바깥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도 어느정도 맞춰나갈 수 있다면 내 일로 받아들여 보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5

물론 일을 잘 해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다가 중단되면 아니 시작한만 못하지 않나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일단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자고 생각했다. 앞날은 알 수 없지만, 어려움이 생긴다면 여기 이 마을에서 어떻게든 해결해주지 않을까 하는 매우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6

그렇게 시작한 일. 아이들과 함께 농사 짓는 시간이 즐겁다. 늘지 않는 것 같아도 vs 아이들은 손톱만큼 자라고 있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vs 한 해 두 해 몸에 조금씩 새겨서 익히는 것이 보인다. 농업 기술을 익히는 것. 직업교육과정 프로젝트로 시작한 일이지만, 직업교육 그 이상의 의미가 농사를 함께 짓는 일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2막

C

#7

지난 1년간 꿈이자라는뜰에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해온 보루는 학교를 통해 급여를 받았다. 그 덕분에 오히려 큰 어려움 없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만약 전공부를 창업하고 바로 농사를 지어 자립을 하려고 시도했다면, 보루는 지난 일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땅도 없고, 밑천도 없고, 고작 2년의 전공부 경험에, 몸도 아직 농사일에 익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8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한 아이들이 한 해 두 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보인다. 마을교사들도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프로젝트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그것도 내년이면 끝이 난다. 이후에는 어떻게 할까? 보루는 그리고 꿈뜰은 내 년에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농사를 지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일은 가능하고, 유익하며, 필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꿈이자라는뜰을 지켜보던 주변사람들에게 싹트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나같이 이 활동이 프로젝트가 끝나도 계속되기를 바랐다. 학교의 정식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야 제일 좋겠지만, 아직까지 어느 곳에서도 이런 방식의 특수교육 예산을 책정한 사례가 없었다. 만약 상위교육기관에 이 프로젝트 사업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다면 예산을 더 확보할 수 있을까? 


#9

성과를 보여주기에 언론에 노출되는 것만큼 쉬운 일은 또 없다. 하루는 수업시간을 촬영해서 방송에 내보내라는 제의를 받았다. 보루의 머릿속엔 방송촬영을 하다보면 연출이 불가피한 상황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원래부터 안하던 일을 한 것처럼 짜서 찍자고 한 것도 아닌데, 다만 다른 요일의 활동을 앞당겨서 찍자고 한 것 뿐인데, 보루는 그 정도의 연출마저 내키지 않았다. 어쨌거나 아이들을 방송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직접 방송에 내보내는 것은 왠지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거절하였다. 보루의 완고한 고집때문에 어쩌면 안정적인 예산을 확보할 수도 있었을 기회가 물건너 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을 부탁하고 지지했던 사람들과도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보루가 너무 딱딱하게 군 것은 아닐까? 예산도 예산이지만 지지하던 사람들을 잃어서 좋을 일도 없는데...


D

#10

해가 바뀌고,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났다. 다행히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발견해 준 특수교사들은 방과후 예산으로 꿈뜰의 교육과정을 지속하기로 한다. 초등, 중등, 고등 방과후 예산이 나오는 출처는 각각 다르지만 학교를 넘나들며 예산을 쓰기로 했다. 초등 예산으로 초중등이 함께 어울림 수업을 하고, 중등 예산으로 중고등이 함께 목공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실 학생들에게 있어선 예산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논의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실은 그만큼 교사들간의 신뢰관계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햇살배움터에서도 부족한 강사비를 보태주었고, 마을일터 인턴쉽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경비도 지원해주었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어든 예산은 마을교사들이 감수하기로 했다. 두 사람분 강사비가 줄어 한 사람분만 나오게 되었지만, 여전히 강사는 두 사람이 하기로 했다. 여기에 마을사람들의 도움도 큰 힘이 되었다. 조용히 계좌번호를 물어보시고 알아서 만원, 이만원 자동이체를 신청해주시는 이웃 분들이 한분 두분 늘어났다. 어떤 성과도, 결과물도 요구하지 않으셨다. 보루는 마치 마을이 챙겨주는 기본소득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덕분에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봄 모종장, 가을 추석장에서도 마을 분들의 호응은 실로 고마웠다. 해마다 일손을 나눠주시고, 씨앗을 나눠주시는 이웃도 계셨다.


#12

아직 한번도 마이너스가 된 적은 없지만, 꿈뜰 재정은 넉넉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기가 어렵고, 뭔가를 시작해도 조마조마한 모험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장애인 일꾼을 고용하거나, 보루의 역할을 나눠 맡을 동료일꾼을 맞아들이기엔 여전히 재정이 부족하다.


E

#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일꾼을 맞아들이는 실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수업과 농장을 담당하는 보루가 더 이상 혼자서는 넘치는 농장 일을 감당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정리 J가 파트타임으로 농장 일을 도와주게 되었다. 장애에 큰 관심은 없지만, 농사를 짓고 싶은 부분, 매우 적은 보수지만 급여가 안정적인 부분이 서로 맞아떨어졌다.


#14

그러나 보루는 당장의 농사일을 함께 하는 일꾼 이상의 동료가 필요했다. 농사일을 쳐내는 것도 급급하지만, 실은 꿈뜰의 여러 영역중의 한 부분을 나누어 맡아서 일할 사람, 그때 그때 중요한 논의를 일상적으로 나눌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1년 정도 함께 일하고 나면 그렇게 J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장애는 그 말만으로도 문턱이 높게 느껴진다. 무언가 장애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만, 특별한 관심이 있어야만 장애 관련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농촌엔 사람이 정말 귀하다. 그러다보니 동료를 만나기가 정말 어렵다. 행여 관심이 깊지 않다 하더라도, 함께 긴 시간을 보내고 일이 익숙해지면 관심이 커질 수도 있지않을까 싶지만, 넉넉하지 못한 재정은 그 기간동안 적절한 보상을 지원해 줄 수가 없었다.


#15

J는 그 다음 해에 일을 그만두었다. 다른 관심사 때문이라고 했지만, 만약에 적절한 급여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함께 일하는 시간이 적었던 것도 마음에 걸린다. 수업을 하러가거나, 다른 일들을 처리하러 돌아다니느라 둘이서 함께 오랜 시간을 일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급한 농사일을 쳐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료가 되어가는 일에 신경을 더 썼어야했다. 그리고 혹시 보루의 고집스런 어떤 면이 동료를 만드는 일에 장애가 되었던 것은 또 아니었을까? J의 빈자리는 매우 컸다. 이미 J가 합류하기 전에도 농사일이 많았지만, 새로운 동료를 위한 재정 수입을 마련하려고 구정리에 500평 밭을 더 얻어두었기 때문이다. 


F

#16

새학기가 시작되고, 슬슬 모종을 키우기 위해 씨를 넣어야 할 때가 되었다. 보루의 외로움을 잘 알고 지내던 영은이 일에 합류하게 되었고, 영은의 도움으로 영실, 인숙 일꾼이 합류하게 되었다. 그것도 매우 갑작스럽게. 한 달전만해도 한 해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할 지 막막했는데. 덕분에 늘어난 구정리 고요밭 농사도 잘 마칠 수 있었고, 농장도 이전보다 틀이 잡힐 수 있었다.


#17

새로운 수익도 생겨났다. 지난 5년동안 꿈이자라는뜰에서 버텨온 시간들이 그대로 재료가 되었다. 꿈이자라는뜰의 지난 5년간의 수업활동 기록과 전공부 10년의 농사일지 기록을 정리해서 텃밭일지 농사달력을 펴냈다. 아울러 그간의 경험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영은의 도움으로 평생학습센터 지원사업을 받아 장애와 농업 다리놓기 공부모임을 진행하였다. 그 덕분에 예상밖의 수입이 생긴 보루는 일본 의료생협 견학도 다녀오고, 새로운 컴퓨터도 마련할 수 있었다. 시간과 기록의 힘 덕분이었다. 


#18

장애와 농업 다리놓기 공부모임에서는 지난 5년동안 꿈이자라는뜰의 경험에서 길어낸 여섯가지 열쇳말 <교육, 치유, 자립,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산, 김포, 정선 등 먼 곳에서 부모님들과 특수교사들이 공부모임을 찾아와주셨다. 매번 모임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질문이 있다. 장애인이 농사를 지어서 자립을 할 수 있는지, 꿈뜰은 농사를 통해 자립을 하고 있는지, 보루는 어떻게 먹고사는지 매우 궁금해하셨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에 대해선 이렇다할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생산성이 낮은 장애인과 수익성이 낮은 농업이 만났으니 경제적인 자립에 대해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어떻게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버텨왔는지가 그렇게 신기하고 궁금하셨던 것 같다. 



3장

G

#19

처음엔 농사를 짓는 것이 전부였다. 목적이었고, 결론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모든 장애 청소년들이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농사를 통해서만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저마다 각자에게 유익한, 다양한 기회들을 농사를 짓는 과정안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것. 농사의 품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발견한다. 목적이나 결론이 아니라, 방식 또는 과정으로서 농업을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재발견한다.


#20

처음엔 농사를 지어 자립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장애청소년이 꿈이자라는뜰 과정을 통해서 나중에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농업기술을 익히고, 취업을 할 만큼 성장을 하고, 결국엔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꿈이자라는뜰도 결국엔 농사로 자립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루도, 교사도, 부모도 처음엔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보루의 눈에 다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 하는 것이 익숙해진 아이들, 자연스러워지고 당연해진 아이들, 한 시간동안 꾸준히 일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풀매는 일이 익숙해지자, 이제는 김을 매면서 교사와 학생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앞에서 '자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뭐가 고민이니'라고 물었을 때는 들을 수 없을 이야기들이었다. 각자의 작은 텃밭에서 주어진 일을 성공해냈을 때는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가 이어졌다. 


#21

무언가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은 힘들고 우울한 시간이 왔을 때,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중에 돈벌기 보다 지금 행복하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도 발견했다. 치유가 된다는 것은 장애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측정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지금 함께 일을 하고, 수다를 떨고, 행복한 시간을 즐기면서 아주 조금씩 회복탄력성을 저축해나가는 것, 스스로를 다독이고 ‘치유’해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 농사를 지으면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H

#22

’비장애인도 힘들어하는 농사일을 우리 아이가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기왕이면 바리스타같이 세련된 일을 하면 좋겠는데...’, ‘학교일자리 급여에 비해 농사를 지어서 받을 수 있는 급여는 얼마나 될래나?’와 같은  인식을 마주하게 되면 기운이 쑥 빠진다. 하지만 그런 인식을 두고 너무 현실적이기만한 인식이라며 탓하기도 어렵다. 

현실에서는 돈벌기와 행복하기 이 둘 중에서 어느게 정답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경제사정이야 집집마다 다 다르겠지만, 장애가족의 경우 비장애가족보다 생계부담이 더 큰 경우가 많다. 아울러 부모가 없는 미래 어느 시점에서 자식의 삶을 생각하면 뭔가 통장의 잔고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기가 어렵다. 개인의 장애를 개인이, 가족이 책임져야하는 현실에서는 목구멍이 포도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결정권이 부족한 발달장애청소년들의 삶은 부모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꿈이자라는뜰은 그 부모님들과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을까? 적게 벌더라고, 행복하게 농사를 짓자고. 힘들고 지저분하더라도, 농사를 지어야 행복하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하다.


#23

한데 모이는 경우가 적어서 그렇지 발달장애청소년, 학교교사, 부모, 마을교사처럼 꿈이자라는뜰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 사람은 그 수가 꽤 많은 편이다. 그러니 매해마다 들고 나는 사람도 많고, 아직 미처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학교교사와 마을교사, 아이들은 자주 만나다보니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신뢰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하지만 부모님과 만나는 시간은 물리적으로도 많지 않은데다가, 좀처럼 인식의 간격을 좁히기가 어렵게만 느껴진다. 일년에 두세번 정기 부모모임을 하는데, 참석하는 분들은 한두분정도. 최근엔 조금 늘어서 서너분이 오시기도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의미와 가치들을 나누기엔 여전히 막막해 보인다. 장애와 농업을 연결하자, 장애와 마을을 연결하자는 뜻을 품었으나 정작 부모들에게 호응을 얻고 연결되기가 무척 어렵다.


#24

꿈이자라는뜰은 지금까지 아무런 법적인 모양의 조직을 갖추지 못했다. 사회적 기업도 아니고, 비영리단체도 아직 아니다. 여지껏 꿈뜰에게 가장 적합한 틀을 고르느라 시간이 걸렸고, 그 틀을 여럿히 함께 마련하고 싶어서 또 계속 미뤄온 것이다. 장애인과 가족, 이웃 주민, 마을교사와 특수교사가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공부도 하고 이야기도 꺼내 보았지만, 앞으로 한걸음을 내딛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다.


I

#25

꿈이자라는뜰 농장 부지를 임대해준 땅주인이 내년부터는 연세를 올려달라고 한다. 안정적인 농장부지를 마련하는 것은 오랜 숙원이었다. 하지만 농사를 지어서, 운영비를 마련하고, 땅을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제는 너무나도 명확해 졌다. 이 현실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나. 


#26

교사와 주민 몇몇의 도움으로 영농조합을 만들었다(만들예정이다). 부모, 교사, 주민이 함께 축을 이루어 출발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타협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일단  교사와 주민이 먼저 힘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들지만, 부모와 당사자의 자리를 최대한 열어놓고 확보하는 노력을 병행하기로 했다. 영농대출과 공동체 토지신탁으로 우리는 땅을 마련할 수 있을까? 장애인은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하고, 비장애인은 할 수 있는, 필요한 일을 하고. 서로 어울려 인간미를 느끼고,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공간, 함께 살아가는 힘, 어려운 현실을 견디는 힘을 키워주는 공간을 우리는 확보할 수 있을까?


#27

2014년을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의지했던 루시가 마을교사를 그만두었다. 아쉽고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도 농장일꾼으로 일하던 영실과 인숙이 2015년에는 마을교사를 병행하기로 하고, 새로 이담도 동료일꾼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담은 지금껏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꿈뜰에서 일하면서 농장 일도 함께 하고, 수업도 같이 진행하고 있다. 장곡면 가송리에 사는 형욱도 농장일꾼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형욱은 일주일에 4일 오전시간에 함께 일한다. 3월부터 시작했으니 3개월이 지난 6월부터는 급여를 지급했다(할 예정이다). 꿈뜰에서 일하는 모든 농장일꾼과 마을교사는 일의 종류나 장애와 상관없이 오직 일하는 시간의 차이에 따라 수익의 1/n을 활동비로 나누기로 했다. 과연 이 실험은 어떻게 마무리가 될까?



Epilogue

오전에 감자밭 김매고, 호박 참외 옮겨 심고, 오후에 어울림 수업하고, 농장에 돌아와 열무 솎고, 시금치 걷고...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담이가 물었다.

“꿈뜰이 원래 이렇게 바쁜가요?”


담이의 물음에 보루는 초점을 제대로 못맞추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그래, 일을 많이 한다고 돈을 많이 버는게 아니었으니, 지금보다 일을 조금 줄인다고 해서 돈이 크게 줄지는 않을거야" 


보루의 엉뚱한 대답에 담이는 현명한 대답으로 방향을 돌려주었다.

“저는 돈을 적게 받아도 괜찮아요. 아니 많이 받으면 오히려 더 힘들어 질 거 같아요.”


이제서야 말귀를 알아들은 보루.

“그래 맞아, 돈도 돈이지만 여유를 가지고 일하는게 더 중요하지. 그나저나 우리는 얼마만큼 일하고 얼마만큼 돈을 벌면 적당할까? 재미와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계속 이 일을 하고 살려면 말이야.”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다음 시즌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을까? 



2015.05.21







* 꿈이자라는뜰 기록물 보관 상자

아직 상자를 다 채우고, 정리하지 못 함. 

2개를 마련해서 현재 밝맑도서관에서 보관중.

박신자선생님, 홍화숙선생님과 함께 나머지 작업을 이어갈 예정


* 분류표와 기술서






꿈뜰_분류표와기술서_2015final.pdf

(수정보완의 여지가 있으며, 최종파일이 아님)

* 꿈이자라는뜰 사람들의 연대기

어느 해에 어떤 선생님과 어떤 학생들이 함께 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만든 표.

(이 자료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공개를 생략합니다)


꿈이자라는뜰 사진책

2009~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한 해에 한 권씩, 사진기록 정리체계에 따라 사진책을 만들 예정임


* 졸업생들을 위한 사진책

꿈이자라는뜰을 시작한 2009년부터 저마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해서 꿈뜰을 떠나는 시점까지,

"다양하고 풍성한 추억을 불러일으켜줄 사진들, 외롭고 울적한 마음을 따뜻하게 덮혀줄 이야기들을 모아 전달하자"는 것이

마을기록수집가양성과정을 수료하면서 생각한 우리 꿈뜰만의 기록물 활용법이었습니다.


+ 만드는 방식(계획):

가제: 우리가 함께 한 멋진 순간들

Heart_우선 좋아보이는 사진들에 heart 체크

Best Cut_그 해,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장 멋진 순간들

Mise en scène_이야기거리를 읽어낼 수 있는 사진들

그 외에 누락된 꿈뜰의 주요 활동이 담긴 사진들


+ 만드는 방식(실제):

1. 2009년부터 2014년까지 19,433장의 사진을 모으고 추려서,

2. 얼굴인식 기능으로 사람마다 3~4백장씩 사진을 분류하고,

3. 변화의 흐름과 이야기가 담긴 사진을 다시 한번 추려서 80장을 고른 다음

4. 그 중에서도 한 해의 가장 멋진 순간 한두장씩은 더 크게(5x7) 뽑고

5. 나머지는 보통 크기(D4)로 뽑아서

6. 20장(80매분) 앨범에 한장씩 순서대로 정성껏 붙여서

7. 지난 2월 4일 풀무학교 고등부 창업식에서 두명의 친구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두 친구가 가끔씩 이 앨범을 꺼내보면서 즐거워할 수 있기를, 도스토예프스키 할배(?)의 이야기처럼 지난 추억을 되새기며 다시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라고요, 미처 앨범을 만들어주지 못한 이전 해의 친구들에게도 하루빨리 작업해서 앨범을 전해줄 예정입니다. 꿈이자라는뜰의 기록을 위해서 한 권씩 사본을 만들어 보관해두었습니다.








* 마을기록수집가 양성과정에 대한 (보루의) 매우 개인적인 기록경험



+ 나레이션_마을기록수집가 기록경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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